야고보서 5:13~16, 기도하고 찬송하라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말씀 묵상을 돕는 글】
오늘 본문에는 주로 ‘기도’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는데, 먼저 13절을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말합니다. 12절에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이것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면 ‘맹세가 아니라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이요’(προσευχέσθω)라는 동사의 시제는 현재능동태입니다. 그래서 현재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에 처하게 되었을 때 인내하고, 끝까지 참아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찬송할지니라(ψαλλέτω)’고 말하는데, 사실 이 단어는 하프나 거문거와 같은 악기의 현을 뜯는 것으로부터 유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 연주와 함께 노래하는 것까지 확장이 되었고 초기 기독교의 예배에서는 찬송가와 영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14장 15절을 보면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찬송하리라’(ψαλῶ)가 오늘 본문과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즐거워하는 자에게 ‘찬송’을 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는 영적인 긴장감을 갖기 쉽지만 쉬운 일이나 즐거울 때는 자칫 방종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쁘고 즐거운 상황에서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을 드리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병든 자’는 신체적인 질병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연약한 믿음이나 도덕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육체의 질병이 영적인 질병을 초래하고, 영적인 질병이 육체의 질병의 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장로들’(πρεσβυτέρους)은 지금의 ‘목사’와 같은 교회의 지도자를 지칭합니다. 그래서 병든 자가 병을 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교회의 목회자를 청하라는 것인데, 그 다음을 보면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기름을 바른다’(ἐλαίῳ)는 말은 ‘기름으로 문지른다’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어색하게 들리지만 당시에는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행위가 하나의 의술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의사가 치료를 하는 행위와 비슷한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서는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은 ‘기도할지니라’(προσευξάσθωσαν)가 주동사입니다. 그래서 기름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병자를 방문하여 치유의 방편으로 의술을 사용할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병자의 나음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5절을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기도’ 앞에 ‘믿음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이유는 병든 자를 치유하는 능력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름’을 바르는 의학적인 치유 행위를 무시할 수 없다 하더라도 병자의 치유를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이고, 그 ‘기도’도 ‘믿음’으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하리니’(σώσει)는 신체적인 질병에서의 치유된다는 의미와 함께 바로 다음에 나오는 표현처럼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특히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고 말하는데,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는 죄가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으로 병을 주시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믿음의 기도는 죄사함의 은혜를 통해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말합니다. ‘죄를 서로 고백’한다는 것은 ‘치유를 위한 기도’가 상호간의 관계성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죄의 고백’도 상호간에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치유는 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서로 고백’하는 과정에서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이 구절을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지만 ‘고백한다’(Ἐξομολογεῖσθε)는 단어는 ‘out of, from’을 뜻하는 ἐκ와 and ‘to confess, to agree’를 뜻하는 ὁμολογέω의 합성어로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는 고백’을 뜻합니다. 그래서 강제적인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만인제사장설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와같은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의인의 간구는 역하사는 힘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인’은 절재적으로 무죄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용서를 받은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역사한다’는 말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통해 능력을 보여주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기도와 찬송에 대하여 귀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는데, 우리도 이 말씀에 의지하여 병든 자를 위한 믿음의 기도,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쁘고 즐거운 순간에는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고난이 찾아올 때는 기도하게 하시고 즐거울 때는 찬송하게 하소서.
2.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3. 죄를 고백하며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