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3~6,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말씀 묵상을 돕는 글】
베드로전서 1장 3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 “거듭남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듭나게(다시 살게)’(ἀναγεννήσας)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듭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으로 ‘하늘로부터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늘로부터 새롭게’, ‘하늘의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재창조’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산 소망, 소망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유업’(κληρονομίαν)은 ‘유산’(Inheritance)과 같은 것인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물려받게 될 ‘유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것이라고 말합니다.
‘썩지 않는다’(ἄφθαρτον)는 것은 말 그대로 ‘망하지 않는다, 영원하다’(Incorruptible, imperishable, immortal)는 것이고, ‘더럽지 않다’(ἀμίαντον)는 것은 단순히 지저분하거나 깨끗하지 않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순수하다(pure)’ 혹은 순결하고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돈으로 자식을 키우려다 자식을 망치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의 ‘유업’은 성도를 망치도록(spoil)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쇠하지 아니한다’(ἀμάραντον)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소멸되거나 사라지는 ‘기업’이 있지만 하나님의 유업은 ‘Unfading, imperishable’, 영원한 ‘유업’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5절을 보면,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제자들은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인생을 예수님께 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베드로전서의 배경은 박해의 시대라고 말씀드렸는데, 만약 베드로전서가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AD 64년경) 쓰여진 글이라고 본다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하기 직전에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로마 성의 화재 원인을 그리스도인에게 전가하면서 엄청난 박해가 시작되고 있을 때 성도들은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φρουρουμένους)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베드로는 여기에 대해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한두가지 시험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시험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받는 시험(πειρασμοῖς)은 ‘성도들을 실족하게 하는 유혹’(더럽히는)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을 성숙하게 하는 훈련(trials)’이고, 지금 겪는 근심도 ‘영원한 근심’이 아니라 ‘잠깐의 근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ἀγαλλιᾶσθε)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근심과 걱정이 없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근심과 걱정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이 너무 크고 위대하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을 겪는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이와같은 사실에 대해 이미 설교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사도행전 2장 24~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베드로가 말하려고 했던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은 어떤 건물이나 형식이나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끝까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향해 ‘산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유업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활의 현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부활의 기쁨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된 후에 성도들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유업을 약속받은 소망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잠깐’ 어려움과 고난과 환란을 당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이와같은 기쁨이 우리의 삶에도 가득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산 소망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을 잇는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3.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